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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기

남해 봄바람에 가족 정도 두터워져

토요일, 바람이 꽤 쌀쌀하게 부는 아침 이었다. 이 날은 신랑과 시매부의 생일이 하루 상간이라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시댁식구들과 가족여행가기가 조금은 어렵다고는 하지만, 애기 낳고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이라 무척 설레었다. (아 물론, 일과 연관되어 간 여행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나만 들떠있었던 모양이다.  다들 일주일동안 일에 지쳐서인지 장을 보러갈 시간인데도...오전동안 아무도 깨어있는 사람이 없었다. 성질 급한 나는 결국, 혼자서 장을 봤다. 무거운 것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느라 손목이 욱신거리지만, 혼자서 장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았다.


지친사람들은 푹 잤는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오후 1시쯤에 출발했다. 목적지는 남해였다.  나의 설레임이 딸아이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 차를 타있는 동안 여기 저기 살피느라 눈이 바빴고 이내 소리를 질러대며 신기함을 표현했다. 가는 길에 중리 제일고등학교 뒤쪽에 새로 생긴 국수집이 맛있다고 하여 점심을 국수로 떼웠다.


국수 맛은 일품이었다.  국수를 먹고 남해로 가고 있는데 ‘백천사’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시누이가 와불상과 목탁소리내는 소가 유명한 곳이라며 한번 둘러보자고 했다. 절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와 신랑은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큰 불상이 우리를 맞았고 노스님께서 만드신 건강환(?)을 한알씩 먹으면서 330년 와불상을 보고 내려왔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가려고 했던 백천사가 아니였다. 거긴 ‘백룡사’였다.  둘러보고 내려와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절 입구 맞은 편에 ‘백천사’는 600M를 더 가야 나온다는 안내판이 그때서야 보였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가자’는 의견이 대부분이라 백천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간은 1시간 좀 더 걸렸는데 곳곳에 놓여있는 불전함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는 짧은 시간 꽤 많은 돈을 쓰고 절에서 내려왔다. 


 


<포대화상님과 닮은 신랑의 넉넉한 모습>


절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눈 앞에 쫙 펼쳐진 바다 정경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미리 예약된 펜션으로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시원하게 바닷가 길을 갔다가 다시 꼬불꼬불 산길을 갔다가 한참을 그렇게 반복하니 다랭이 마을이 보였다.  예약을 시누이가 해서 주위 정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파릇파릇 마늘이 올라온 다랭이 밭을 보고 ‘와~’하고 탄성을 지르니, 아버님이 ‘저게 신기하냐’며, ‘옛날에는 그런 논을 많이 있었는데..’라며 신기해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셨다. 그러면서 다랭이 논에 대해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옛날에 한 농부가 삿갓을 쓰고 다랭이 논으로 일하러 갔는데, 가져간 삽을 꼽고 그 위에다 갓을 올리고 도포를 걸어놓고 일을 시작했지. 일을 마치고 나서 이제 가야지 하며 갓과 도포를 벗기니 그 밑에 논이 하나 더 있었던 거야.  그 정도로 옛날에는 작은 공간도 놀리지 않았지’...


다랭이 논의 특징이 잘 드러난 인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농촌에 곳곳에 놀리고 있는 땅들이 떠올라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아름다운 남해의 정경>


다랭이 마을 지나니 우리가 예약한 펜션이 바로 나타났다.  라이브 펜션이라는 곳인데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곳 이였다.
주인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상 덕분인지 펜션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도로가에 있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으며 다락방이 있어 여행 온 기분을 한층 북돋아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저녁을 준비했다. 일단 주인 아주머니께 숯불을 피워달라고 부탁 하고 마산에서 사온 가리비와 백합 등을 준비해서 야외로 나갔다.  바닷바람이 꽤 차가워 일단 나와 시어머니 그리고 딸은 방에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셔 결국 아이를 들쳐 업고 밖으로 나갔다.  날씨는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게 느껴졌다.  딸은 똘똘 싸서 갑갑했는지...연내 소리를 질러대고 뻣대고 난리였다.  결국 딸 때문에 잠시 어울렸다가 다시 방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맛있는 조개, 새우 구이>


방에서 아이랑만 놀고 있는 내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어머니는 ‘애는 내가 볼 테니 나가서 놀아라’ 라고 하셨다.  마음 같아서는 ‘네’하고 얼른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아이랑 한참 놀고 있는데, 구운 조개와 새우를 가지고 신랑이 올라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같이 내려가서 마무리하고 오자’고 했다.  시어머니도 계속 그러라고 하셔서 못 이기는 척 하며 나갔다.  나가는 길에 우리 신랑은...‘나 잘했지?’라며 나를 툭 친다.  귀여운 신랑...


이미 시아버지와 시매부는 술 한잔 드셔서 기분이 좋으셨다. 나도 내가 준비한 막걸리를 한잔 먹으면서 맛있게 조개와 새우를 먹어댔다. 한 참을 그렇게 웃고 떠들고 마시고.... 먹었다. 이럴 땐 잠시 아이를 잊고 재밌게 즐길 만도 한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방에 남겨진 시어머니와 아이가 걱정이 되었다.  불안한 마음에 결국 난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어쩔 수 없다 보다.


조금 있으니 모두 방으로 와, 결국 방에다 술상을 차렸다. 딸은 생애 처음 보는 딸기에 정신이 팔려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먹는 것으로 장난치겠냐며 딸이 딸기로 온 방바닥을 황칠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다음 날 새벽, 아버님과 어머님은 새벽잠을 깨워 자식들 싱싱한 해산물 먹일 거라고 미도항 갈 준비를 하셨다.  연세 드신 분만 보내기가 걱정되었는지 게으른 신랑도 함께 나섰는데, 차로 왕복 한 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는 어른들의 수고 덕분에 아침에 싱싱한 문어와 해삼, 멍게를 맛있게 먹었다.


아침을 먹고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다 바람... 봄 바람을 맞으며 쑥을 캤다. 쑥 캐는게 재밌었는지 온 손이 가시로 마신창해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결국 쑥은 한 주먹 캐고, 손은 한 광주리 캔 사람처럼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오전 나절을 보내고 바닷가를 따라 하동 섬진강가를 거쳐 마산으로 왔다.


1박 2일 짧은 여행이었지만, 몸은 무척 피곤했다.  어린 딸도 지쳤는지, 오는 동안 곯아 떨어졌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은 봄의 향기를 양껏 맡을수 있었고 가족의 사랑이 듬뿍 담긴 행복한 여행이였다.


잠시지만, ‘딸 때문에 여행와서도 힘들구나’ 라는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내 처지를 배려해주신 어른 들 덕분에 그 원망이 부끄러워졌다.


가족이라는 건 그런 것 같다. 재고 따지지 않고 그냥 이해하고 배려하는거... 결혼 5년차가 되었지만 난 아직 시댁식구들에게 그렇게 마음에 문을 열진 못한 것 같다. 어찌보면 5년이란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기에 당연한 듯 생각되지만, 가족으로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은 필요할 듯 하다.


남해의 봄 바다~

따뜻한 바람에....그리고 따뜻한 가족들의 정에 취해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