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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기

돈에 의해 불심에 상처 입다.

 

가족들과 함께 남해로 가던 중 OO사에 잠시 들렀다.  TV에 몇 차례 방영되어서 그런지 꽤 알려진 절인 듯 했다.  가족들 대부분이 그 절에 대해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절 입구에 즐비해있는 관광버스 그렇게 말해 주었다.


OO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 옆 계곡에는 갈수기인 초봄임에도 꽤 많은 물이 흘렀다.  많은 관광버스가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산세 좋은 곳의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마음을 맑게 해주었다.


촛불을 켜는데 5천원을 내다


들어서자마자 한 보살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고 있는 딸에게 ‘예쁘다’고 하며 관심을 가져 준 보살님은 곧 우리에게 딸의 건강을 위해 초 하나 켜라고 했다.  그 상황에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5천원 짜리 초를 샀다.  참고로 우리 가족들의 단점이자 장점이 마음이 약하다는 것이다.


촛불을 켜고 대웅전에 올라 절을 하려니 평소 불심이 깊으신 어머니께서는 불전함에 돈을 넣으셨다.  시누이도 역시 어머니를 따라 돈을 넣고 절을 했다.  계속 돈을 쓰는 게 마음에 거슬렸지만 우리는 유명하다는 와불상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곳곳에 마련된 불전함


가는 길목에는 포화대상님이 모셔져 있고 작은 연못이 있었다.  안내판에 따르면 불전함에 돈을 넣고 포화대상님의 배를 3번 분지른 후 용천수 대야를 분지르게 되면 소원이 이루어질 시 물이 솟아오른다고 되어있었다.  관심을 보이던 신랑과 시누이는 동전과 천원짜리 지폐를 넣어가며 열심히 문질렀으나 물은 꼼작도 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연못에 동전을 던져 넣고 소원을 빈 후 자리를 옮겼다. 


세계최대약사 와불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갔는데, 세계최대라는 명성에 맞게 매우 컸다.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데 한 보살님이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하셨다.  친절하시다는 생각에 온 식구가 신발을 벗고 와불상 앞으로 갔다.  보이는 불전함에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또 돈을 넣었고 와불 앞 동자상이 들고 있던 약단지를 어루만지며 앞을 둘러보았다.  약단지를 만지면 한가지 병을 고쳐준다는 말이 있다.


성의 표시하라시던 스님


와불 상의 발쯤에 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와불 상 앞에 모셔져 있던 부처상이 '사람들이 많이 만져 흠집이 났다며 보수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어깨를 죽도로 두드리면서 성의를 표현하라고 하셨는데, 가족이 다 같이 왔으니 3만원이면 된다고 했다.  나와 신랑은 짜증이 났지만 시어머니는 머뭇거리신 듯 하더니 결국 3만원을 불전함에 넣으셨다.  가족이름과 주소를 적으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짜증 섞인 말투로 ‘주소는 적지마라’라고 단호하게 말씀 하셨다. 


그렇게 우린 약사와불 몸속법당을 거쳐 우보살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우보살은 말그대로 소인데, 목탁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TV에 출연한 소들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물론, 불전함은 빠지지 않고 놓여있었다. 불심 강하신 어머니께선 또 돈을 넣으셨다.  우보살들의 목탁소리 합창을 듣기 위해 10분을 기다려야 했고, 합창을 하는 듯 마는 듯 하더니 이내 안내하던 보살님은 ‘합창 했으니 박수를 쳐라’고 하셨다.  한번씩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길래 얼른 박수 치고 발길을 돌렸다. 


돈 없으면서 여기에 왜 왔어요?


절을 나가려니 높은 계단위에 작은 법당하나가 보였다.  현수막으로 크게 TV에 반영된 ‘산신할머니 복돌’이라고 적혀있었다.  시누이는 나에게 천원을 빌려 복돌 한번 들어볼꺼라며 높은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보살님 한분이 나타나시더니 시누이에게 뭐라하면서 쌀 한주머니를 머리에 이어주었다.  시누이는 쌀을 이고 법당을 들어갔고 한참을 그렇게 보살님의 말씀을 듣고 앉아있었다.  심상치않게 느꼈던 어머니는 나보고 시누이를 빨리 데리고 오라하셨다. 


시누이는 이미 만원을 내 놓은 상태였다.

복돌 만 들어볼 생각으로 법당을 올랐는데,  보살님은 시누이에게 ‘빌고 싶은게 뭐 냐’고 물었고 시누이는 ‘결혼 3년차인데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더니 갑자기 쌀을 이고 들어오라고 했단다.  엉겹결에 시누이는 쌀을 이고 법당으로 들어가 절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살님은 기도문 견본을 하나 주면서 적게 한 후


“기도를 대신 해 주고 있어요.  백일기도와 3년 기도가 있는데 3년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고 백일기도를 올리면 되겠네요.  10만원이면 됩니다.”

“저 돈 없는 데요”

“(쓰고 있던 펜을 뺏으며) 돈도 없으면서 뭐하고 여기 왔어요”


이 말을 듣고 우리는 어의가 없었다.  이 전까지만 해도 돈은 좀 썼지만 불심 깊었던 어머니께서도 만족해 하셨고 TV에 나왔던 것을 볼 수 있어 나름 좋았는데, 마지막 경험이 이 절에 대한 이미지를 확 깨어버렸다.  가만히 계산 해보니 이 절에서 10만원 가까이 썼던 것이다.  특히, 신랑이 많이 흥분 했는데, 어머니께선 ‘그러지 마라 부처님이 잘못 하신 게 아니다’라고 하시며 신랑을 자제시켰다.


불심 깊은 어머니 마음에 상처를 입히다.


불심 깊은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더 화가 났다.  어머니의 마음이 무시된 듯한 느낌 때문이다.  어머니 말씀대로 부처님 잘못이 아니지만 이런 모습들이 결국 불교를 욕먹게 하는 것이다. 


절 운영을 위해 불자들이 불전 내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게 돈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예전부터 신랑은 우리나라 절이 너무 좋다고 했다.  이유는 억지도 불당에 오르게 하여 절을 시키지도 않고 돈을 내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돈을 내지 않아도 마음 놓고 둘러불 수 있는 곳이라서 그렇단다.  하지만, 이번 경험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절도 많이 다녀보지도 않았던 신랑은 ‘절이 왜 이렇게 변했냐’고 흥분 하니 말이다.


물론, 1시간의 경험으로 성격을 규정하기엔 급한 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경험이 너무도 긴 여운을 남겼고 이미 그 절에 대한 이미지가 시쳇말로 ‘돈밝히는 절’로 굳혀져 버렸다.  제발 잘 못 느낀 것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