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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를 잃어가는 젊은이들의 풍경

오랜만에 버스를 탔습니다. 업무로 삼계에 들른 나는 마산시내로 나오는 버스를 탄 후 뒤쪽에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멀미가 나는 것 같아 잠시 고개를 들어보니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참 예쁜 풍경이라 생각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할머니께서 버스에 오르셨습니다. 내 앞쪽으로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기에 어련히 자리 양보하겠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양보는 젊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아까 어느 아주머니의 양보로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자리를 내어 준 할아버지는 그 앞에 서 계셨고 그 주위에 앉은 젊은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난 할아버지가 서 계신 곳과 꽤 떨어져 있었지만 자리에 일어나서 할아버지께 앉으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내가 잘했다고 자랑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이 당연한 일들이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요?  

30여분 버스 안에 있는 동안 이 풍경만 본 것이 아닙니다.  한 아주머니께서 잠 든 4세-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타셨습니다. 자리는 물론 없었지요. 이 아주머니는 움직이는 버스 속에 위태롭게 버스 손잡이를 잡고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자리를 내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보다 보다 못한 한 할머니께서 자리를 양보하셨습니다. 그 할머니께서는 어떤 젊은 사람에게도 양보 받지 못한 채 서 계셔야했습니다.  

또 한 풍경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자리에 앉아 있고, 허리가 약간 굽은 할머니는 그 뒤편에 힘들게 서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위아래가 없다는 얘길 자주 듣긴 했지만 이런 광경을 직접 보고 나니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지금도 나쁜데, 이제 더 이상 나빠지면 안 되는 세상인데 점 점 더 삭막해져가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풍경 속에서 갑자기 얼마 전 한 회원으로부터 들은 그린마일리지 제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린마일리지 제도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특별시책사업으로 학교 규칙을 어기는 학생에게 체벌대신 상점과 벌점으로 지도하는 제도인데 현재 시범학교를 선정하여 시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제도는 긍정적 행동의 내용, 부정적 행동의 내용, 긍정적 벌의 내용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내용에는 싸움을 말리거나 따돌림 당하는 친구와 놀아주거나, 장애인을 돕는 것 등 구체적인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그 행동에 해당하는 점수도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체득해야할 교육현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점수로 관리한다는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점수로 관리되어지면 아이들의 마음에 따뜻함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그린마일리지 배점 및 지도 방법을 보면서 머리가 쭈뼛쭈볏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교육의 현장이 이런데 오늘 내가 경험한 버스 안 풍경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까지도 점수화 시켜 경쟁시키는 사회! 그 사회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