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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지구 만들기

집이 쉼터에서 운동의 현장으로 바뀌다.

나는 운 좋게도 결혼 전 살림과 잉태, 육아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생활공동체 모임인 등대를 맡고 있지만, 이 일은 결혼 전부터 이어져 왔던 일이다.  그리고 '동화읽는 어른 모임'도 맡아  아이들에게 동화가 얼마나 많은 꿈을 꾸게 해주는지, 그리고 현재 나와있는 전집식을 포함하여 무분별한 동화가 얼마나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함께 모임하시는 분들이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이다.  그러면서 늘 나에게 '미리 알아서 너무 좋겠다'라며 부러운 시선을 던지곤 했다.  당시 나도 그런 착각을 했다.  결혼 전 이런 고민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난 결혼만하면 완벽하게 해낼줄 알았다. 

그러나 5년 지나 생각해보니 역시 그건 착각이었다.  아는 것을 생활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의 협조인데,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처음 1년 반은 내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1년 반이 지나 분가를 할때 쯤 이제 뭔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많은 시도를  했다.  세제를 없애고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은 틀지 않았으며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생협을 통해 먹을거리 구입하기 등등 작은 것부터 실천해갔다.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변화에 많이 놀라 했다.  결혼 전 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다 들어준 남편이기에 내가 하자는대로 묵묵히 따라줄 꺼라 생각해 합의과정이 없었던 것이다. 

몸집이 좋은 남편은 여름 나기를 너무도 힘들어한다.  에어컨이 있는데도(이사 간 집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음) 틀지 않겠다는 나의 고집에 화를 내기도 했다.  세제도 마찬가지다.  빨래를 해도 샤워를 해도 향기가 없는 것에 힘들어했다. 자기것만 따로 사면 안되냐고 난리를 부리기도 했는데 나와 결혼한 이상 그럴순 없다고 했다.  이렇게 자꾸 부딪치니 회원(촛불)들이 '실천의 가장 큰 적은 남편'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이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떤 땐 나 몰래 비누나 치약을 사와서 쓰고 있기도 한다.  그러면 난 '집에 있는 사람도 못 바꾸는데 내가 무슨 환경운동이니 조직운동이니 할 수 있겠냐'며 화를  내는데, 이러면 '아직 난 시간이 필요해'라며 대화를 피한다.

강요과 협박으로 일을 도모(?)하려던 것에 대한 부작용이다.  예전, 한 가족을 변화시키기 과정을 강의를 통해 들은 적 있었는데, 그 분은 2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에게 한번도 강요한 적 없었단다.  그냥 묵묵히 실천했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대해 질문하면 그때서야 실천의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때도 설명만했지 행동 변화에 대해 요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스며듬이 무섭더라'라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 세월이 지나니 어느 순간에 가족들이 모두 바뀌어다는데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다.
 
지금 우리집의 칫솔꽂이에 치약이 2개있고 소금도 놓여져 있다.  남편이 준비한 치약인데 불소, 계면활성제 덩어리인 치약을 향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쓰고 있다.  이것만 쓰겠다고 하니 기다려볼 생각이다.  그리고 지난 여름에 에어컨을 구입했다.  시어머니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갑자기 생일 선물이라며 떡하니 사오신 거다.  물론 틀 지 않았다.  그래도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다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 사람을 바꾸는 일이 그리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바뀐 것이 있다면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해 다른 모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면생리대를 사용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천기저귀를 사용했던 것, 사용하고 있는 세제특징 및 수세미 종류, 먹을거리 구입 방법, 청소하는 방식 등 처음에는 이해 안됐는데 지켜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어떤 때는 권하는 모습도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의 나의 고민은 화장지다.  집안에 화장지 없애고 손수건 사용과 뒷물쓰기를 하고 싶은데 화장지 매니아 남편을 어떻게 설득시킬지 고민이다.  그냥 밀어붙이면 또 몰래 화장지를 사서 쓸텐데..

올해 초에 나왔던 '고마워요 에코맘'을 읽혀야 겠다. 이 책은 가족들과 함께 실천한 이야기들이 분야별로 나누어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다.  이 책으로 확 변하진 않겠지만, 앞서 말한 스며듬이라는 것이 있으니 기대해 봐야겠다.

'함께 살기'란 참 힘들다.  이 이야기는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남편도 늘 하는 이야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그렇게 되었는걸... 나의 실천력을 좀 더 높이고 회유책도 써가며 이 사람의 생활이 좀 더 지구가 행복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겠다.  적어도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그러고 보니 집은 쉬어야하는 하는 곳인데, 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의 현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결혼 전에는 왜 이 사람이 함께 실천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역시, 내가 어렸던 것이다.